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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끔찍할 때

안타깝지만 원고가 졌습니다

by 망고맛치약 2023. 8. 21.

 

출처

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3/01/28/S44CUFEJTBCHJBARENSGRKIIVI/

 

“안타깝지만 원고가 졌습니다”… 삽화도 곁들인 친절한 판결문 보셨나요

안타깝지만 원고가 졌습니다 삽화도 곁들인 친절한 판결문 보셨나요 아무튼, 주말 쉽게 써 달라 장애인 요청에 행정법원 11부가 기울인 노력

www.chosun.com

 

 

 

쉬운 단어와 구어체를 사용하고, 이해를 돕기 위한 그림까지 들어간 ‘쉬운 판결문’이 지난달 2일 한국 사법 역사상 최초로 등장했다.

 

“안타깝지만 원고가 졌습니다.”

 

이는 청각장애인(원고)이 서울 강동구청장을 상대로 낸 ‘장애인일자리사업 불합격처분 취소’ 소송 판결문에서 나온 첫 문장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재판장 강우찬)는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는 기존 판결문에 쉽게 풀어 쓴 문장을 나란히 붙여 썼다.

 

‘쉬운 말로 요약한 판결문의 내용’도 이어졌다. 3쪽 반 분량의 ‘해설’에는 단문과 구어체 문장으로 재판의 내용이 쉽게 적혀있다. 이해를 돕기 위한 삽화도 실렸다. 이는 판결 선고에 앞서 “알기 쉬운 용어로 판결문을 써달라”는 장애인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재판부는 “UN 장애인권리협약 및 UN 권고 의견에 근거하여, 판결문의 엄밀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지 리드(Easy-Read) 방식’으로 최대한 쉽게 판결 이유를 작성하도록 노력했다”고 밝혔다.

 

이번 사례를 두고 전문가들은 “재판 내용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 쓴 것은 헌법에서 명시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평가한다. 

 

 

 

 


 

판결문내용

 

 

 

(모바일 배려)

 

 

청구 취지

피고가 2021년 12월 23일 원고에 대하여 한 2022년 장애인일자리사업 불합격처분을 취소한다.

 

이유

[쉬운 말로 요약한 판결문의 내용]

 

 원고께서는 2022년 10월 22일자 탄원서를 통해 '알기 쉬운 용어로 판결문을 써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하신 바 있습니다. 이는 장애인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헌법 제 34조 제 4항, 제27조, 제11조가 그 근거이고, 이와 궤를 같이하여 UN장애인권리협약(UNCRPD) 제 13조는 '장애인이 평등하게 사법(司法)에 효과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보장하도록 하는'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2022년 UN장애인권리위원회는 대한민국에 대하여 "사법적 절차 전반에 걸쳐 사용할 수 있는 정보전달 및 상호 의사소통의 대안 내지 보강수단(점자, 수화, Easy-Read, 오디오 및 비디오 등)을 개발하도록" 강력히 권고한 바도 있습니다. 또한 대한민국법원이 제정한 '장애인 사법지원을 위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청각장애인 중에는 수어를 주된 언어로 사용하는 등의 이유로, 해당 청각장애인 등의 국어 문장 이해 및 구사 능력에 대한 정확한 조사와 확인이 필요하다."라고 하여 같은 취지로 주의를 환기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본 재판부는 원고의 요청과 장애인권리협약 제13조 및 UN의 권고의견에 근거하여, 판결문의 엄밀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Easy-Read 방식'으로 최대한 쉽게 판결이유를 작성하도록 노력하였습니다.(Easy-Read 방식은, 단문과 동사 위주의 쉬운 문장과 구어체 문장, 그림 등을 사용하여, 문어체 문장 문해력에 제한을 받는 장애인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방식입니다.) 나아가 아래와 같이 판결내용을 쉬운 말로 요약하여 보았습니다. 다소 아쉬운 점도 없지 않겠으나, 처음으로 하는 시도이니만큼 너그럽게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이 사건에서 재판부가 고민한 범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먼저 이 사건 면접과정에서 의사소통에 조력자나 도움이 필요한 청각장애인이나 지적장애인에게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는지 입니다. 비록 자애인들 사이의 경쟁시험이기는 하나, 장애 유형에 따라 차별 없는 적절한 시간안배나 조력이 주어졌는지를 유심히 살폈습니다. 

 위 그림 중 왼쪽 그림과 같은 상황이 원고가 겪은 상황이라면, 평등원칙에 위배되어 위법하다고 볼 여지가 큽니다. 재판부는 이 부분을 세심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이 사건 면접시험에서는 일단 지원자 1인당 20분이 소요될 것을 예정하고 계획을 짠 것으로 인정됩니다. 그러나 실제로 20분을 초과하여 답변하였다고 하여 답변을 제지한 사례는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원고를 포함한 1개조 전체를 수어통역한 통역사도 시간제한이 있는 줄은 몰랐다고 답변하였습니다. 또한 지원자들에게 질문한 문항이 총 5개에 불과하였고, 그 내용도 지원동기,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 당황스러운 상황이나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을 수어통역사가 지원자에게 전달하고 지원자가 그에 대한 답을 하는 과정을 법정에서 반복 재현해 보았습니다. 그 과정을 관찰해 보니, 지원자와 수어통역사 사이의 의사소통에 소요되는 시간을 감안하더라도 20분이라는 시간은 5개의 질문과 답변을 하는 데에 결코 부족한 시간은 아니라고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청각장애인인 원고와 다른 지원자들의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모두에게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다만 결과적으로 청각장애를 가지지 않는 장애인이 원고보다 조금 더 길게 말할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되므로 비청각장애인에게 다소 유리한 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20분을 넘어서 길게 답변을 한다고 하여 제지하지는 않은 점, 지원자 대부분 실제 답변은 할당 된 20분을 채우지 못하고 훨씬 먼저 끝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앞에서 본 거처럼 다른 유형의 장애인에게 약간 유리한 점이 있을 수 있다는 사정만으로 평등원칙 위반과 같은 절차상 '위법'이 있다고 인정하기는 어려웠습니다. 

 

② 시험 전에 별도로 수어 통역사를 만날 시간이 부여되어야 했는지도 고민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회부여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면접에서는 조별로 1명의 통역사가 배치됩니다. 그런데, 예를 들어 순번 1번의 면접이 있은 후 수어통역사가 별도로 2번 지원자와 면담을 한 후 시험장에 들어서게 되면, 순번 1번 지원자는 이미 면접질문을 통역한 수어통역사와 2번 지원자 사이에 혹시라도 시험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 것이 아닌지 의심할 수 있습니다. 시험절차에서 이러한 절차적 공정성, 투명성 확보 분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원고 주장처럼 시험장에 들어가기 전에 수어통역사에게 시험에 대한 포부나 동기를 미리 말할 기회를 부여해달라는 것은 허용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의사소통 방식의 사전 조정은 시험장에서 심사위원들이 있는 곳에서 해도 충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원고의 두 번째 주장도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이상 같은 이유로 이 사건 판결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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